'의사라고 해도 환자와 같이 싸워줄 수는 없다.
이제 각자의 몫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 비슷하게 벌거벗고 순진무구하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천태만상 제각기 다르게 죽는다.
착하게 살았다고 편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못할 노릇만 하며 살았다고 험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남한테 욕먹을 짓만 한 악명 높은 정치가가 편안하고 우아하게 죽기도 하고,
고매한 인격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돼지처럼 꽥꽥거리며 죽기도 한다.
아무리 깔끔을 떨고 살아봤댔자 자식들한테 똥을 떡 주무르듯 하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다년간 생명운동인지 환경운동에 몸담아 왔다는 노인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한 이답게 벌레 하나 들꽃 한 송이도 아낄 것처럼 자비로운 인상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부터는
혼자 죽기는 싫다고, 하늘고 땅이 맞닿아 맷돌질을 해서
삼라만상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악을 악을 쓰다가 죽었다.
생전 땅 파는 것밖에 모르던 농투성이 노인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악기라고는 없었다.
그 노인은 자식들과 장사 치를 사람들 걱정에
춥도 덥도 않은 봄이나 가을에 죽기 하나만을 소원했다.
너무 많이 바라면 안 들어주실 것 같아서
오직 그거 하나만을 천지신명께 빌며 죽을 날을 기다린다는
이 무욕한 노인이 최고기온을 기록한 푹푹 찌는 복중에 죽었다.
이렇게 사람은 각각 제나름을 죽는다.
이 세상에 안 죽을 사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죽을 때는 자기만 죽는 것처럼 억울해하는 건 이런 불공평 때문일까.
무도 없는 무, 호기심조차 거부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육신의 사멸은 의학이 예측할 수 있는 경과를 밟지만 정신의 사멸은 전혀 아니다.'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독후감,,? 같은 것. 가슴을 후벼파는 문장들이 많다.
"사람은 태어날 때 비슷하게 벌거벗고 순진무구하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천태만상 제각기 다르게 죽는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치매라는 같은 병명을 가지고 계시지만, 정말 모든 분들이 다르게 병을 겪고 계신다. 어떤 분은 기억은 잃으셨지만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어떤 분은 과거의 상처가 더 선명해져서 하루 종일 우시기도 한다.
"착하게 살았다고 편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못할 노릇만 하며 살았다고 험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평생 남을 위해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가 지금 가장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말이 너무 와 닿았다. 어머니는 정말 남 도와주는 걸 좋아하셨고, 이웃들 챙기기를 자기 일처럼 하셨는데, 지금은 혼자 화장실 가는 것조차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반면 평생 남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옆집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리신 후 오히려 더 평온해 보이신다. 정말 공평하지 않다.
"다년간 생명운동에 몸담아 왔다는 노인은... 혼자 죽기는 싫다고, 하늘고 땅이 맞닿아 맷돌질을 해서 삼라만상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악을 쓰다가 죽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생 화를 잘 안 내시고 차분하셨던 분이 치매 초기에 갑자기 폭언을 하시기 시작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게 우리 아버지가 맞나" 싶어서 며칠을 울었다. 병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평생의 인격도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구나 싶어서 무서웠다.
"육신의 사멸은 의학이 예측할 수 있는 경과를 밟지만 정신의 사멸은 전혀 아니다"
이게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의사 선생님도 "치매는 개인차가 심해서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시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내일이 어떨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어제는 제 이름을 불러주셨는데 오늘은 저를 못 알아보시기도 하고, 갑자기 30년 전 이야기를 생생하게 하시기도 한다. 몸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데, 마음과 기억의 변화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다.
치매 돌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각자 제나름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같은 병이라고 해도 모든 분들이 다른 방식으로 겪어나가신다. 박완서 선생님의 날카롭고도 따뜻한 관찰이 우리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어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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